개고기는 중국의 야만관습

개고기는 중국의 야만관습

개 먹는 습속은 절대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은 본디 잔인한 사람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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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는 원래 우리나라의 고유음식이 아니다. 중국 최초의 고대국가인 상나라 때부터 식용으로 개가 사육되기 시작했다. 상나라의 유적지인 은허(殷墟)에서는 개 뼈가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이런 전통은 주나라 시대에도 이어져, 주(周)나라 때의 국가행사를 기록한 책인 주례(周禮)에서 제사상에 개고기를 올린다는 기록도 나온다. 진나라 때에는 주요 고기반찬이 될 정도였다. 이 때 우리나라는 중국의 여러 나라와 교역은 했으나 오히려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개를 먹지 않는 북방유목민족들과 문화적으로 가까웠다. 최근 몽골과 한국의 체질 인류학적 또는 문화인류학적 비교연구를 보면, 다른 어느 민족보다도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관련 자료).

개는 평원의 동물이고 우리는 숲의 민족이다. 호랑이가 있는 곳에 늑대는 오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설화나 전설에 늑대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따라서 남만주 일대에서 주로 활동하던 우리 민족은 개와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따라서 먹을 기회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백두산을 비롯한 만주 지역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야생 동물이 가장 풍부한 곳이다. 따라서 굳이 개고기를 먹지 않아도 사냥감은 널려 있었던 것이다. 사냥은 단지 식량을 구하는 일이 아니라, 그것은 생활이고 오락이었다. 쉽게 잡아먹을 수 있는 식용견이 성에 찰 리 없다. 이것은 활달하고 의리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냥기마인들로 볼 때 기회주의자의 습속이다.

[중국의 개도살 장면을 보시고 싶으십니까? 개 죽이는 야만풍습을?

개의 조상격인 회색늑대(이리)는 동북아시아에는 많지 않았고 늑대의 가축화에는 오랜 시일이 걸리므로 외부를 통해 가축개가 들어온 것이 분명하다. 연나라의 랴오뚱 점령과 함께 많은 화북인들이 만주지역에 들어 오고 이 때 가축개가 대량으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개에 관한 기록은, 부족연맹체인 부여의 한 부족명에 ‘구가’란 이름이 나타나고 고구려의 무용총 벽화에 사냥개가 등장하며, 신라인들이 [삽살개]를 귀히 여겼고, 제주도의 일부 부족이 개가죽으로 옷을 해 입었다는 정도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이전까지 개고기를 즐겨 먹었다는 확실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삼국시대부터 즐겨 먹었다는 사람들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다. 부여에 부족연맹으로 참여한 구가(개 먹는 족속, 아마도 화북인들)과 위만조선 멸망 후 남하한 중국계 농경부족들 사이에 그런 습속은 있었을 것이다.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와 고려 때에는 불교를 국교로 삼은 만큼, 개고기는 물론 다른 육류도 많이 섭취하지 않았으며(박계홍, 1992, 한국민속학개론), 이 때까지 이어진 사냥기마민족의 전통상 개고기를 달가워했을 리 없다. 사냥기마민족 또는 유목기마민족은 그들의 사냥을 돕는 개를 몹시 사랑한다. 이것은 터어키 샤탈휘이크 벽화와 무용총 사냥도에서도 확인된다. 우리와 인종적으로 가장 가까운 몽골족과 동북시베리아의 현존 퉁구스족들도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우리 민족은 개고기가 맞지 않는 태음인과 소양인이 8할을 차지한다는 점에서도 이것이 증명된다. 같은 기마민족인 몽골인도, 일본인도 먹지 않으며, 고아시아족인 북미 원주민들도 먹지 않는다. 이들은 오히려 개가 죽을 때는 친자식처럼 소중히 묻어주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는 개를 먹은 기간보다 먹지 않은 기간이 더 길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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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개 먹는 것을 우리 문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 조상의 숭고한 얼을 욕되게 하는 짓이다. 후손에까지 물려줄 아름다운 문화를 발굴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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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동화책엔 온통 멍멍이를 그려 놓고, 어른들은 그것을 잡아먹는 교육. 어느날 아이가 “저 멍멍이 불쌍해” 라고 이야기 했을 때, 당신은 “저 개는 먹는 거야” 라고 대답할 수 있는가. 그러고도 그 아이가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길 당신은 원하는가. 이성을 되찾고, 이제 교육적 차원에서 다시 이 문제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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