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펌] 서너살 아이들까지 무차별 사살

미군, 지난해 이라크 양민 24명 학살 충격

`이라크판 미라이 학살` 미 상원서 청문회

포로 학대보다 심각 … 반전여론 가열될 듯

미군이 지난해 11월 이라크 하디사 마을에서 양민 24명을 학살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뉴욕 타임스(NYT)는 28일 생존자 증언을 통해 미 해병대의 만행을 고발했다.

로이터통신은 베트남전의 ‘미라이 학살’이 연상된다고 보도했다. 미 상원은 진상조사와 책임추궁을 위해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 3~4세 꼬마에게도 총질=

생존자인 히바 압둘라(여)의 증언을 토대로 한 NYT의 보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난해 11월 19일 오전 7시15분쯤 미 해병대원들이 집에 들이닥쳐 총을 난사했다. 남편과 시아버지(66).시어머니(66) 등 가족 7명이 즉사했다.

그중엔 네 살짜리 조카도 포함됐다. 시누이는 남편이 죽는 걸 보고 다섯 달 된 아이를 떨어뜨리며 기절했다. 그 아이를 안고 피신한 뒤 돌아와 보니 시누이도 숨져 있었다. 아홉 살짜리 조카와 일곱 살짜리 남동생은 침대 밑에 숨어 살았지만 가족들이 살해되는 장면을 모두 봤다.’

사건을 조사 중인 미군 관계자는 “압둘라의 시아버지는 코란을 손에 들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숨졌고, 시어머니는 기도하는 자세였다”고 말했다. 미군은 이웃인 유니프 살림 나사이프의 집도 덮쳐 3~14세의 어린이들을 포함한 8명을 사살하고, 다른 집에서는 남성 4명을 살해했다. 니사이프 집의 생존자인 사파 유니스 살림(13)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오빠 밑에서 죽은 척했다”며 “미군은 총을 쏘기 전 가족들을 발로 차고 고함을 질렀다”고 증언했다.

미군은 또 지나가던 택시에도 총격을 가해 18~25세의 학생 4명과 운전자가 사망했다.

존 머서 민주당 하원의원은 “자식을 품에 안은 채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여성도 사살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해병대가 사건 직후 일부 희생자 가족에게 돈을 준 것은 학살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포로 학대 사건보다 심각=

머서 의원은 “이번 사태는 미군이 아브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이라크인 포로를 학대했던 것보다 미국의 이미지를 훨씬 더 손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미라이 학살 사건이 베트남전 여론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이번 사건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29일 전몰 장병 추모일(메모리얼 데이)을 맞아 “호국영령을 위한 길은 (이라크전과 테러와의 전쟁에서) 우리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으나 반전 여론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피터 페이스 미 합참의장은 29일 철저한 조사와 관련자 처벌을 다짐했다. 학살 가담자는 살인 혐의로 기소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상원 청문회에서 만행이 확인될 경우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사임을 요구하는 소리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중앙일보]

◆ 미라이 학살 =

1968년 3월 16일 미군이 베트남 미라이 마을에서 주로 부녀자와 노약자인 양민 504명을 무참이 살해한 사건이다. 미군은 마을회관으로 주민들을 불러 모은 뒤 기관총을 난사했다. 주민들은 신분증을 흔들며 베트콩이 아니라고 했지만 미군의 사격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가옥을 불태웠다. 이후 미군은 학살 사실을 1년 동안 은폐했다. 이를 NYT의 세이무어 허시 기자가 취재해 보도했다. 이후 반전 여론이 들불처럼 확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