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와 대한민국

다른 종목과 달리 피겨 스케이팅은 오랫동안 동·서양의 차이와 국가별 부(富)의 차이가 극명하게 반영돼 왔다. 체형·체력과 문화적 배경에서 서양인에 비해 불리한 아시아권은 감히 세계 정상에 도전할 엄두조차 못 냈다. 훈련시설과 장비 등 기본 인프라를 감당할 경제력이 없는 나라들도 피겨 스케이팅을 꽃피우기 어려웠다. 당연히 역대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는 유럽과 북미 선수 일색이었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일본 선수가 아시아권 첫 우승을 기록한 게 고작이었다.

일본에 비해 선수층이나 훈련 여건이 한참 처지는 우리나라가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사실상 ‘기적’이나 마찬가지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피겨 스케이팅의 선구자들이 페어 연기를 연습하다 ‘풍기문란’ 죄로 경찰에 연행되던 나라였다. 게다가 김연아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기로 여자 피겨 스케이팅의 세계를 완벽히 지배했다”는 극찬까지 받고 있다.

김연아 선수는 경기 후 “너무 기뻤고, 모든 게 끝났다는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고 고독한 훈련 과정을 거쳤는지, 얼마나 큰 심적 부담감을 갖고 있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발언이다. 그러나 김연아는 숙원이던 올림픽 금메달로 일단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두었지만, 우리 사회는 그의 우승을 계기로 ‘새로운 시작’을 모색해야 한다.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고 저마다 자기 분야에서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 마침 영국의 한 신문도 그제 ‘한국,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라는 칼럼을 통해 “늘 중국과 일본에 치이고 세계로부터 무시당한다고 생각해오던 한국이 경제·국제정치적으로 성장해 피해자·약자의 지위를 벗어나게 됐다”고 평가하지 않았는가. “숙원이던 부국의 지위에 들어서는 단계”라고 하지 않았던가.

모든 일에는 조짐(兆朕)이 있는 법이다. 우리나라가 겨울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종목을 넘어 스피드 스케이팅 장·단거리를 제패하고, 첫 피겨 금메달을 거머쥐고, 메달 수에서 일본과 중국을 누른 것은 다른 분야에서도 조만간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알려주는 전조(前兆)일 것으로 믿는다. 김연아라는 천재도 거저 태어난 것이 아닐 것이다. 모친의 지극정성 없이 김연아의 재능이 지금처럼 만개(滿開)했을 리 없다. 우리 젊은이들이 겨울올림픽을 주름잡는 데는 전쟁과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피땀 흘려 이만큼 나라를 발전시킨 선배 세대가 든든한 밑거름 역할을 했다. 이제 선진국까지 한두 고비밖에 남지 않았다. 한번 더 뛰자. 김연아가 얼음판 위를 멋지게 도약하듯, 각자 자기 자리에서 힘차게 뛰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