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렴 전 비서실장이 말하는.. 박정희 에 리더쉽

사물의 핵심을 빨리 잡아내고 알기 쉽게 설명한 정확한 말과 글이 지도력의 본질』

金正濂(김정렴) 前 청와대 비서실장은 박정희 대통령 재임기간 15년11개월 가운데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9년3개월 동안 비서실장 직을 수행했다. 그를 만나 의명 서류철을 보여 주고 박정희 리더십에 대해 들었다.

― 朴正熙 리더십의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그의 리더십은 핵심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데서 나온다.

그는 무엇보다도 정확한 말과 글을 사용했다. 말을 옮기면 글이 된다.

그리고 「희노애락을 표현하지 않음」, 「과묵하고 말이 많지 않음」, 「심사숙고하며 충동적 결정이 없음」, 「현장 指導(지도)식 방법을 운영함」, 「구체적 사안에 대한 이해가 빠름」, 「역사에 대한 이해, 영웅들의 철학에 대한 이해가 탁월함」, 「家臣(가신)을 쓰지 않음」, 「문제가 있으면 회의를 소집함」, 「조직은 간결하게 하고 사람을 잘 씀」, 「구체적 사안에 대해 장관, 국장, 과장의 답변을 차별하지 않고 들음」, 「각 부처의 연두 보고서는 연중 틈나는 대로 되풀이해서 읽음」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 朴대통령은 어떤 인물인가.

『우수한 교사이며 군인이고 행정가이며 지도자이다. 그는 識者(식자)층에게는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으로 설명하고, 국민들에게는 「잘살아 보자」와 「하면 된다」로 설득했다. 이 간결한 메시지를 되풀이해서 제시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하지 않는다』

― 그의 관심사는 무엇이었는가.

『부국강병, 곧 경제발전과 자주국방이었다. 그것은 북한에게 먹히지 않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는 南과 北 사이에 경제적 격차가 생기면 한국의 국력이 이북으로 파급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전쟁을 막을 수 있고 통일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통일이 먼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말로만 하는 통일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일제 시대 때 엽전 소리를 듣고 천대받던, 국민소득 76달러, 수출 6000만 달러 정도, 지구에서 最貧國(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던 대한민국을 중흥시키는 실질적인 과제에 관심을 두었다』

― 그는 근엄했는가.

『그는 여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았다. 청와대에서는 과묵하고 웃지 않았으나 청와대 바깥에서 농민 등을 만나 막걸리를 마시면서는 웃었다. 청와대에서도 두 달마다 비서관들과 막걸리 파티를 하는데 그때는 술 못하는 비서관들에게 맥주와 사이다를 섞어 권하기도 했다』

― 朴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미국 군대 조직은 가장 발달한 행정 조직 가운데 하나이다. 광복 후 한국군이 미국군의 편제를 도입했고 그 안에서 朴대통령은 통솔력과 참모의 자질, 참모장의 조건, 참모 쓰는 방법, 지휘관의 조건 등을 익혔다』

― 청와대 비서실 운영 방침은 어떠했는가.

『그는 간소한 조직을 선호했다. 내가 재임할 때 청와대 인원이 늘 220명을 유지했다. 김대중 정부 400명, 노무현 정부 490명과 비교가 된다. 朴대통령은 인원이 많다고 잘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청와대가 크면 행정부의 힘이 약해진다고 판단했다』

― 청와대 인사 방침은 어떠했는가.

『수석비서관은 자신 아래에 비서관을 2~3명 두었는데 그 비서관들의 선발은 수석 비서관이 직접 했으며 「군대를 갔다 왔는지」 등의 기본적 조건만 대통령이 물었다. 대통령은 수석비서관이 청와대를 떠날 때 데리고 온 비서관들도 함께 떠나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 朴대통령의 회의 방식은 어떠했는가.

『회의에서 절대 먼저 얘기하지 않고 참석자에게 발언하라고 한다. 관계 수석비서관이 개요에 대해 발언을 하고 주무장관, 부총리, 총리 순으로 발언한다. 대통령은 발언을 들으면서 직접 필기를 한다. 대통령이 종합해서 이야기를 하고 결론을 내리는데 주무장관이 「아니오」 하면 다시 토의한다. 결론이 나지 않으면 다음날로 넘긴다. 대통령이 밤에 고민하다가 장관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면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주무장관 (또는 수석비서관)이 주장하는 대로 하고 회의 소집하지 말라」고 지시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 전체 수석비서관회의도 자주 있었는가.

『대통령이 소집한 전체 수석비서관회의는 9년3개월 가운데 10회 미만이었다. 비서실장인 내가 매일 아침 30분씩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했는데 그럼으로써 수석비서관들 사이에 정보 공유가 이루어졌다』

― 대통령의 연설 솜씨는 어떠한가.

『대변인이 초안을 잡고 연설담당 비서관이 작성하여 대통령에게 보고하면 대통령이 읽고 이런 문제를 던지라고 요망한다. 다시 고쳐서 대통령에게 주고 대통령이 이에 대해 첨삭한다. 10억 달러 수출 달성할 때 대통령은 즉석연설을 했다. 그것은 수출 증대 방법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대단한 명연설이었다』

― 참모나 장관들이 朴대통령을 존경했는가.

『그는 신념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꾸며진 것이 아니라 순수한 것이었다. 참모나 장관들은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존경을 그에게 보냈다. 그는 참모나 장관들에게 충성을 하라거나 따라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