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국제 미아` 되려는가 ?

지금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많은 혼란의 근본 이유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현실적 위상과 한국인의 의식 간의 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몸은 국제사회에서 30~40대의 성년으로 성장했는데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의식은 10대에 머물고 있다. 세계 경제력 10위의 국가라면 그에 걸맞은 외교력과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발상이 필요한데도 지금 우리 사회는 구한말의 저항적 민족주의나 1980년대의 종속이론과 같은 피동적이고 소극적인 세계관에 의해 영향받고 있다.

21세기의 미래를 설계해 나가고 조만간 닥쳐올 한반도 통합시대에 대비해 전략적으로 준비하는 원려(遠慮)의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대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식의 감정적 민족주의가 이 시대의 키워드가 돼 버린 느낌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과거의 포로, 한(恨)의 포로로 남아서는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1세기 전 우리 조상은 바깥세상 돌아가는 것에 어둡고, 민족의 역량을 결집하지 못해 일본 제국주의에 당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감성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개념 중 하나가 자주(自主)다. 1세기 전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조선을 일본에 넘겨준 미국, 분단의 책임, 광주항쟁을 야기한 전두환 독재를 지지한 미국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탈미(脫美)가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것도 이해할 수는 있다. 중국의 국력이 상승하면서 탈미친중(脫美親中)을 전략적 선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외교는 감성이 아니라 차가운 계산으로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에게는 북한 동포를 살리고 남북 간에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민족적 과제가 있다. 미국에 대한 감정에 사로잡혀 외교정책을 밀고 나간다면 북한 동포들의 고통은 그만큼 더 깊어지고, 한반도 평화정착의 길도 더 험난해질 수밖에 없다. 좋든 싫든 미국이 세계정치.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을 벗어나야 한다고 외치는 일부의 주장이 과연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우리 민족의 미래를 열어 나가겠다는 것인지, 하루가 시급한 북한 동포들의 고통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국제정치에서 힘의 진공상태란 존재하지도 않고 상정할 수도 없다. 국가는 어떤 형태로든 힘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타국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가장 유리한지 냉정하게 계산하고 따져야 한다는 점이다. 물이 더럽다고 한탄할 게 아니라, 그 물속에서도 적응해 힘이 세지도록 체질을 바꿔 생존하는 법칙을 익히는 것이 물고기가 사는 길이다.

80년대 후반 이래 세계사에서 하나의 법칙이 돼 버린 것은 사회주의 체제가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 자체 전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망하게 돼 있다는 점이다. 북한도 예외일 수 없다. 그렇다면 대북 포용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북한의 시장경제화를 돕는 일에 맞춰졌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2003년 현 정부가 출범했을 때 DJ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대북정책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어야 한다.

인권 문제도 남북 채널을 통해 비공개적으로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우리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하며 행동의 변화를 요구해 왔어야 한다. 그런 원칙을 갖고 포용정책을 펴 왔더라면 북한이 지금처럼 우리를 우습게 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입지도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다. 포용정책을 추진하는 방법과 과정이 세계사의 흐름과 세계사회에서 존중받는 가치에 부합하지 못한다면 자칫 남북이 함께 세계사회의 미아(迷兒)가 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