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함의 극치를 드러내는 글…역사공부좀 해라

조선시대의 지배층은 흔히 알고 있는 양반으로 알고 있다.

이들은 주로 조선의 개국과 동시에 형성되는 공신들과 관료들 신진사대부층

등에 의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양반이라 불리게 되었

는데 주로 문신 관료를 문반, 무신관료를 무반이라 불러 이 두가지 관료층을

합해 양반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애초 양반의 의미는 문무관료를 뜻하는 말이

었으며 조선초의 경우 지배층은 이들 극소수에 국한되었다.

조선시대가 진전되면서 양반층이 확대 되는데 임진왜란시까지 전체 국민의 5%

를 넘지 않았다. 임진왜란 후 전국토가 쑥대밭이 되어 조선의 경제는 극도로

피폐해지고 이로 인해 신분제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상품화폐 경제가 발전하면

서 돈을 번 사람들이 관직이나 신분을 사고 팔게 되었다. 정부도 재정확충을

위해 납속제도를 시행해 양반신분층의 숫자는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했다.

18세기에 이르면 양반은 전국민의 30%에 이르게 되었고 19세기 중엽에는 60%가

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이르면 이미 조선의 신분제도는 별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고 고종대에 흥선대원군은 양반에게도 군역을 부과하는 호포제를 실시 했다.

18세기 김홍도의 풍속화나 19세기의 사진자료를 보면 양반자제와 평민자제가

한데 뒤섞여 서당에서 공부하는 장면을 쉽게 접할 수 있다.

1894년 갑오경장에서는 바야흐로 신분제를 폐지하기에 이른다. 신분제는 더이상

있으나 마나한 제도였기 때문이다. 의병장중에는 평민출신 의병장도 대거 등장

하여 신분에 관계없이 조직을 이루고 항일운동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일제시대에 한국의 신분제가 없어졌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일제시대에 공식적

으로 신분제 관련해서 시행한 별다른 시책이 없었으며 조선 말기의 신분제 상황

은 해방후 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오히려 한국전쟁이 신분제에는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아무리 신분제가 없어졌다

고는 하나 각 고을에서 유지는 대대로 유지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전국민이 뒤섞여 버리는 현상이 발생했고 북한에서는 아예 지주를

쫓아내 버리고 사회주의적인 완전평등 정책을 폈다.

남한에서는 한국전쟁후의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인한 극심한 인구이동이 신분제에

대한 완전한 해체를 이룩하는데 한 몫을 했다.

우리역사 어디에도 일제식민 통치로 인해 신분제가 사라졌다는 증거는 없다.

그런식으로 어떻게든 일본의 식민통치를 미화하려는 친일파 내지 일본 극우 세력

들은 수치스러운 줄을 알기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