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으로 분석한 야스구니

일본에 주둔한 GHQ는 2차대전 발발 정신적 지주는 야스구니로 분석하고
야스구니의 토지의 국유화와 전쟁미화 벽화 제거등을 요구했다.
당시 일본군 장교 출신의 담당자는 전쟁유족들을 이용하여 국고환수반대 여론을 만들었고,벽화제거에는 콘크리트로 릴리프 처리를 하였다.
그리고 그 자신이 야스구니의 승려가 되어 지금도 전쟁 혼을 군장교 출신이 관리하고 있다.
촛불을 나누듯 나눌 수 없다는 군 출신 승려의 궤변으로 야스구니에 참배하고 싶지 않은 일본인 유족및 외국인 유족들에게도 제사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신종 신사 군국주의를 지금도 행하고 있다.

또한 교통및 무도관,학교,은행,서점등 주변지역을 개발하여 미군이 군정을 이양할 때까지 차분히 20여년을 잠복해 있다가 군정이양이 끝나면서 한 껍질씩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자위대가 구탄시다 근처인 이치가야로 위치한 것은 행동언어적 표현으로
자위대는 야스구니와 함께한다는 멧세지로 전달되는 것이다.
구단시다의 마츠리(축제)도 참배객 유치를 위한 것쯤은 일본인의 상식이다.

말 장난 입 장난으로 꿰멜 수도 없는 본색을 그들은 앞으로 무엇으로 또 치장하려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