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의 평화와 안보 의미

지난달 31일 아르메니아와 터키가 ‘100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외교관계를 맺기로 했다. 아르메니아는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한 나라로 카스피해와 흑해를 사이에 두고 있는 코카서스 3국(그루지야·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중 하나로 우리에게 다소 낯선 이름의 나라이기도 하다.
 아르메니아는 터키 북부에 있는 그리스정교 국가로 터키가 오토만제국(Ottoman Empire)이란 이름으로 맹위를 떨치면서 유럽을 위협하던 시절, 터키의 식민지에 불과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이 감당해야 했던 정치적·사회적 차별과 억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가장 비극적인 일은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중 발생했다. 당시 오토만제국으로부터 독립을 바랐던 많은 아르메니아 젊은이들은 러시아군에 지원해 터키군과 싸웠고 이는 터키인들의 불안을 자극했다. 그 결과는 참혹한 인종살육전(Armenian Genocide)으로 비화됐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1915년에서 1916년까지 죽은 사람이 어림잡아 60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그러나 다른 많은 학자는 100만 이상이 터키군에 의해 살육됐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터키는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과장됐을 뿐만 아니라, 그 원인도 터키군의 학살이 아니라 당시 아르메니아에서 발생했던 그리스정교도와 이슬람교도들 간의 내전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비극의 역사에서 누가 옳으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적의의 기억을 치유하고 위로하기보다 더 참혹한 방식으로 증오의 기억을 누적하고 적의를 더욱 두텁게 쌓아가기 때문이다. 구소련의 통제력이 약화됐던 1988년 아제르바이잔에서 시작된 문명의 충돌은 아르메니아, 러시아, 터키로 비화되면서 터키와 아르메니아는 다시금 전쟁상태로 돌입했다. 아제르바이잔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인들이 독립을 요구하자 이슬람교도가 지배적인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물리적으로 탄압하면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의 충돌로 발전했던 것이다. 회교국 터키는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고 아르메니아를 견제했다. 러시아는 아르메니아를 지원하면서 터키를 견제하고자 했다. 사무엘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Clash of Civilization)에서 충분히 강조했던 사항들이다. 탈냉전시대의 국제정치는 종교라는 이름의 문명을 단층선으로 해서 갈등이 발생하고, 문명적 동질성이 동맹국으로 전환하게 된다고 설파했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수백 년을 대립하며 적의와 증오를 쌓아왔던 아르메니아와 터키가 국교를 정상화하려 한다는 것은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헌팅턴이 염려했던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문명의 단층선을 경계하는 그들의 가슴속에 숨겨진 서로에 대한 적의가 사라진 것일까? 증오와 적의의 단층선을 가로지르는 차가운 평화(Cold Peace)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견고한 힘(Hard Power)이 없다면 그러한 평화는 수백 년 동안 누적돼 온 적의의 욕망을 잠재울 수 있을까?자국을 지킬 힘이 없다면 그 알량한 평화마저 누리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국가안보는 그 이상의 의미와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