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씨 사건은 미국 문화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저는 현재 영국에서 7년째 유학중인 학생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영국으로 홀로 건너와 지금은 대학에 다니고 있죠.
저의 때론 직접적이고 때로는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조승희씨 사건을 바라보았습니다.

일단 유학생은 두 종류의 경우가 있다.
부모와 함께 현지에서 살며 교육을 받는 경우가 첫번째일 것이고,
부모는 한국에 있고 학생만 타국에서 교육을 받는 형태가 두번째일 것이다.

조금 다른 기준으로 나눌 수도 있다.
현지에서 태어나 계속 그곳에서 공부한 것이 한 예일테고,
한국에서 초등 또는 중등 또는 고등교육의 일부는 받은 상태에서 유학을 가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두가지 경우다 후자에 속한다.
중학교 2학년까지 한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혼자 유학을 온 형태이다.
혹자는 나의 경우를 가장 이상적인 조기유학의 형태라고 말하기도 한다.
유학을 시작한 때가 너무 이르지도 않고 너무 늦지도 않은 시기라고 한다.

조기 유학은 자체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문제점이라기 보다는 위험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 지도 모르겠다.
경제적인 문제, 인종차별의 문제, 문화에 대한 거부감 문제 등등 수도 없이 많은 문제가 있지만,
조기 유학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체성 문제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조승희씨가 과연 한국인인가.
혹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만 미국문화에 젖은 미국인인가. 하는 문제로 많은 대립을 한다.
하지만 이거을 알고 있는가?
바로 그것이 대부분의 조기유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라는 것을.
자신이 한국인인지. 혹은 해당국가의 문화에 젖은 외국인인지를 판단하는것.
문제는 그 판단이 그리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나보다 2년 먼저 유학을 온 동갑내기 친구가 있다.
영국에 처음 유학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는 친구이다.
기숙사 생활을 함께 오랜시간 해온 덕도 있고,
원래 성향이 비슷한 점도 많았지만 서로 맞는 부분이 많은 친구다.
그 친구와 내가 가진 한가지 차이점은 바로 국적에 대한 부분이다.
그 친구는 과감히 한국 국적을 포기한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물론 그 이유는 군대이다.
어차피 영국에서 일할 것이고 35세 이후에 다시 국적을 취득하면 되기에,
영국 국적을 취득하면 한국 국적을 버리겠다고 한다.
나의 경우에는 굉장히 다르다.
한국인이기에 한국인으로서 해야할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2년이라는 시간이 들어도 군대를 다녀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절대 가고싶다는 것은 아니다.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의 의식차이는 가히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지금 한국의 초등학교 고학년 및 중학생의 실정은 잘 모르지만,
세살터울의 동생이 있는 내가 보기에는 그 차이가 확연하다.
어떤 이는 편협하고 극단적인 민족주의가 한국사회내에 팽배하다고 말하지만,
민족이라는 개념자체가 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유학길에 오른 학생들의 주체성에 대한 고뇌는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철학가의 그것처럼 사색하는 식의 고뇌는 아니다.
한국인의 사회 -가정- 과 다른 문명의 사회에서의 이중적인 삶에 대한 대가는 혹독하다.
나도 그런 경험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위계질서가 분명한 한국사회와,
나이와 학벌을 떠나 서로 평등한 관계로 시작하는 서양사회에서의 이중적인 삶은,
나에게도 주체성에 대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이런 주체성의 문제가 조승희씨의 범죄행위의 유일한 이유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 문화의 문제인가 아니면 인종차별에 대한 보복인가하는 표면적인 현상보다는,
그것들이 야기시키는, 혹은 그것들을 야기시키는 근본적인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