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 반드시 망한다

1985년 1991년 일본은 헤이세이 호황으로 미국 땅과 건물, 회사를 사들이면서 미국을 먹어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상징이라 불리던 록펠러 센터, 컬럼비아 영화사 등등 80년대 내내 있었던 일입니다. 특히 플라자 합의 이후 엔고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앞다투어 해외투자에 나섰던게 바로 80년대 후반의 상황입니다.(중공이 지금 인민폐절상에 힘입어? 해외에서 기업을 사들이는것과 비슷)

세계 기업들의 주식 시가총액 상위 10개사중 7~8개사는 일본차지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2002년 세계 10대기업 반열에 일본기업은 단한개도 남김없이 사라졌습니다.

플라자 합의 와 버블의 붕괴
 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80년대 말~90년대 초에 걸친 버블발생과 붕괴에서 찾을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대장성의 ‘호송선단'(은행과 관련 기업들이 주식을 상호 보유) 행정과 관치 금융(관료 출신이 민간 은행의 임원 70%차지) 에서 비롯된 ‘일본형 금융시스템’의 문제점에서 기인한다. 전후 일본은 사회적 자본의 효율적 동원을 통한 경제발전의 기치아래 대장성에 의한 금융기관의 보호, 규제를 통한 금융시스템의 안정성 확보에 금융행정의 최우선 목표를 두었다.
 정부 보호하의 일본 금융기관들은 플라자합의(선진 5개국이 달러가치를 내리는 방향으로 정책 공조를 합의) 이후에도 금융자율화시대에 적합한 다양한 금융기법 개발과 체질개선을 소홀히 하였다.  95년 기준 자산규모면에서 일본계 은행은 세계 10대 은행 중 9개를 차지했으나 수익률 면에서는 100대 은행에 단 1개도 진입하지 못하였다. 일본정부는 플라자합의 이후 엔고 충격완화를 위한 금리인하(5% -> 2.5%) 및 내수확대정책으로 부동산 경기과열(버블)을 유발하였으며, 91년에는 일시에 금리를 인상하는 충격처방으로 과열현상을 붕괴시켜 결과적으로 일본 금융기관의 파탄에 상당부분 책임이 있다고 평가된다.
 버블붕괴와 함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부동산을 담보로 한 금융권의 대규모 대출은 대부분 부실채권이 되었으며, 금융기관들 중 일부는 부실채권의 급증으로 부도위기에 직면하였다. 
[출처] 경제침체로 인한 사회문제 |작성자 배고파
1985년부터 6년간 평균 51% 올라

1990년대 터진 일본의 거품은 주식과 부동산 등 전형적인 ‘자산 가치 거품’이었다. 일본의 주가는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엔고에도 불구하고 가파를 상승세를 타 1989년 말엔 닛케이 평균 주가가 3만8000엔까지 뛰었다. 4년 전인 1986년 1월 1만3000엔의 3배로 상승한 셈이다.

값이 뛴 건 땅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평균 땅값은 1988년 공시가격이 전년 대비 21.7% 상승하는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가 상승은 1990년까지 계속돼 상업 지역 땅값이 1985년에 비해 4배 가까이 뛰었다. 땅값이 오른 원인은 1986년 시작된 도쿄 지역의 토지 수요 증가 때문이다.

우선 외국 금융 회사들이 일본 머니(Japan Money)를 노리고, 도쿄에서 사업을 늘리기 시작하면서 사무실 수요가 급증했다. 또 1947~49년 출생한 ‘단카이(베이비붐) 세대’의 소득 증가로 넓은 주택 수요도 많아졌다. 이로 인해 주택 건설 붐이 일었고 일반 서민까지도 투기를 목적으로 다세대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일본의 집값은 1985년부터 6년간 평균 51%나 올랐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만 하던 주가와 땅값이 일시에 폭락한 건 정부 규제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1990년 들어 재할인율을 6%로 올리는 등 금융 긴축을 실시했다. 자산 거품을 더 키워선 안 된다는 여론이 크게 작용한 때문이다.

비싼 땅값 문제가 이슈가 되자 일본 정부는 1990년 ‘토지기본법’을 제정해 토지세를 도입했다. 대장성(현재 재무성)은 행정지도를 통해 은행의 부동산 대출에 대한 총량 규제에도 나섰다. 금융 세제 등 전방위적 압박은 결국 부동산 가격 폭락을 불렀다.

땅값 하락은 자산 가치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켜 주식 가격도 떨어뜨렸다. 닛케이 평균 주가는 1989년 12월 3만8915엔을 정점으로 곤두박질쳐 7600대까지 주저앉았다. 집값도 평균 40% 이상 떨어졌고 일반 토지 가격은 정점 때의 4분의 1로 가라앉았다.

부동산 회사에 투자했던 일본의 4대 증권사 야마이치증권 등이 도산했고 부실 주택 금융은 금융시장의 지뢰밭이 됐다. 이후 부동산 대출 비중이 컸던 홋카이도 다쿠쇼쿠은행 등이 파산했고 일본 정부는 당시 금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30조 엔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했다.

금융 위기는 실물경제 침체로 파급돼 2002년 경기가 서서히 회복되기까지 10년간의 길고 어두운 불황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