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4 노근리사건으로 반미의식화!

1950년 6월 세째 일요일 ,새벽 4시 그날은 비가내리고 있었다.

작전명 폭풍, 스탈린의 한반도 침략은 개시된다.
38선전역에는
약15만명의병력과 211대의항공기 242대의탱크 728문의야포,가 한국을 향해 진격을 시작한다.모두 소련제 신식 무기들이다.

3일만에 서울은 함락되고 중앙청에는 스탈린과 김일성의 대형 초상화가 걸린다.
한국전쟁의소식은 전세계에 타전되고..
일본의 맥아더 사령부는 비상이 걸린다.
맥아더는 일본에 주둔하고있는부대중 사기가 가장좋은

스미스대대를 선두로 미8군을 한국에 급파한다.

오산죽미령에서 스미스대대는 최초로 북한군과 접전을 벌인다.
그러나 미군은 북한군에게 작살이 난다.

미군72명이 생포되고 200명가까이 실종되거나 전사한다 .
대전에서는 미군 사단병력이 괴멸되고

사단장 딘 소장이 생포된다.
미군이 두려워하는건 피난민으로 위장한

북괴의 편의대(특공대)들이다.
북괴군은 피난민을 지뢰 지대로 몰아내는 작학성과시하며…

노근리는 대전 동남쪽에 위치한다.
계속해서 다가오는 피난민 그들이 던지는 수류탄,
미군은당황했다

저지선의 미군 장교들은 상부에 위장 적군의 사살을 건의 하지만 상부에서는 민간인 사격을 불허했다.

계속 작살나는 미군과 국군,그 피해가 겉잡을수 없게되자
드디어 상부에서는 가이드 라인을 정해 선을 넘을때에 한해 공격을 허락한다.

노근리마을 사람들은 폭격을 피해굴다리밑에 피신한다.
마침 전면에는 미군이 저지선을 구축하고있었다.
당시미군들은 공포에휩싸여 있었다…

동무들은
미군이 양민을 재미로 죽였다고 선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