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은 세종시에 올인하라

2002년 11월 초.

대선을 한달 남짓 남겨둔 시점에서 여론은 뚜렷한 1강 2중을 유지한다.

이회창 36%, 정몽준 23%, 노무현 17%.

세사람의 지지율이 3개월간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자 정몽준 노무현후보 단일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다.

당연히 여론의 우위를 점하고 있던 정몽준이 보다 적극적으로 보챘다.

확신이 없던 노무현은 시간을 벌며 미루고 있었다.

11월 중순으로 접어들며 정몽준 노무현의 지지율에 미세한 변화가 감지된다.

노무현의 지지율이 미세한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했고, 승부사 노무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 추세를 유지한다면??

지고 있지만 미세한 변화가 보이는 지금이 천시(天時)..

노무현은 정몽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전격적인 발표를 한다.

다음날 이 기사는 모든 언론에 대서특필되었고, 이슈를 선점한 노무현은 단숨에 정몽준의

지지율을 턱밑까지 따라잡아 버렸다.

일단 결정한 다음엔 미적거리고 망설일 필요없이 일사천리에 속전속결.

여론조사에서 앞서왔던 정몽준 캠프는 검토도 분석도 제대로 따져볼 겨를도 없이 얼떨결

에 인감도장을 찍고 러브샷을 해버렸다.

도련님의 용꿈이 재가 되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한달만에 180도로 뒤집힌 이 기막힌 현실을 도련님 정몽준이 제대로 인지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얼떨결에 날아간 용꿈.

승자 노무현을 따라다니며 지원유세를 하던 정몽준이 선거전날 노무현지지 철회선언을

한것은 그때까지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최후의 삽질이었다.

악몽은 다음날 바로 현실이 되었고, 그제서야 정신이 든 정몽준은 굴욕적인 항복을 한다.

“저의 사려 깊지 못한 판단에 대해 국민과 노무현 당선자에게 송구스럽습니다”

그 반년전쯤…

월드컵 황태자 정몽준이 일치감치 대선캠프를 꾸리고 첫 번째 눈독을 들인 사람은

바로 미래 연합의 박근혜였다.

박근혜를 만나러 가는날 정몽준 캠프는 잔뜩 들떠있었다.

박근혜에게 제의할 카드는 당대표였다. 재산이 몇조인지도 모르는 갑부 정몽준의

으리으리한집 주인이 되는데 설마 박근혜가 거절하랴 자신만만 했다.

박근혜가 이 황금카드를 거절하리란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당연히 협상결렬과 거절에 대비한 후속제안 같은 것은 준비조차 안했다.

당대표라는 선물보따리 들고 룰루랄라 소풍갔던 정몽준은 박근혜의 일언지하에 딱지를

맞고 되돌아 온다. 이건 뭐 당대표라는 선물보따리는 꺼내보지도 못했다.

그때 정몽준을 멍 때리게 만든 박근혜의 거절이유는 한마디로 분명했다.

“정체성이 맞지 않는다”

정치적 철학도, 국가적 가치관도 없는 두루뭉실한 정치인 정몽준의 정체성..

과거의 사례로 보나 현재의 정몽준을 보나 그의 정체성은 그저 우유부단한 천상 부잣집

도련님이다. 치열한 투쟁으로 권력을 쟁취하는 투사기질 같은건 아예 없어 보인다.

그는 정글법칙이라 부르는 정치적 생존게임을 통해 자신을 단련시키고, 경륜과 지혜를

쌓아가는 일반적인 정치 코스도 거치지 않고, 훌쩍 뛰어넘었다.

언제나 상류사회의 로열패밀리였고 재벌의 상속자이자 후계자였다.

그런 그가 정치판에 뛰어들었다고 해서 없던 싸움닭 기질과 근성이 생겨나겠는가?

박근혜를 ‘다리아래 미생’으로 표현한 것도 정몽준의 단견과 무지의 상징이다.

그 도련님에게 박근혜가 ‘판단 오류’와 ‘신뢰상실의 책임’을 묻는것은, 공당의 대표라는

엄중한 위치를 망각하지 말라는 충고였다. 머쓱해진 정몽준이 ‘너무한 말씀’이라며 꼬리

를 내렸는데, 언론들은 격돌이니 되받아쳤니 하며 선정적 제목을 뽑아댔다.

내가 보기엔 박근혜의 한마디에 정몽준은 진작에 눈을 살포시 내리깔았고, 기자들 앞에서

체면을 다 구긴 도련님이 ‘나는 의견도 못내나’하고 궁시렁거린것 뿐이다

당대표 정몽준이 도련님이라면 총리 정운찬은 샌님쯤 될것이다.

현재 두 정씨의 공식적인 위치는 대통령 이명박의 2인자들이다.

총리야 당연 2인자이고, 당권을 대통령께 온전히 바친 한나라당이니 지금의 정몽준대표는

누가봐도 2인자에 불과하다. 두 2인자가 합심해서 세종시 전도사를 자임하고 나섰다.

총리는 연일 충청도로 발품을 팔고 다니며 정부역량을 총동원해 여론몰이에 나섰다.

당대표는 이명박표 세종시로 당론을 변경을 위해 작심하고 팔을 걷어 부쳤다.

오리지날 당론인 원안고수는 해당행위라며 탈당 분당이라는 막가파들까지 나타났다.

언론은 행정부처 이전을 공공연하게 ‘수도분할’로 각인시키고, 수정안 찬성론자들의 의견만

쏟아낸다. 오늘자 중앙은 원로와 전문가 20인의 의견이라며, 결론은 ‘이명박 박근혜 만나라

는 주문을 내보냈다. 결론은 다 내리고 난 지금 만나서 무얼 얘기하라는 것일까?

속보이는 재스츄어다.

아무리 정치가 오묘한 예술이라지만 세종시 문제는 두사람이 만나서 풀기엔 늦었다.

이명박은 이미 전쟁을 선포했고, 안에서 밖에서 공중에서 지상에서 물밑에서 전방위로 홍보

폭탄을 터뜨리고 있다. 넘치는 화력으로 그 타켓은 정확하게 박근혜를 겨누고 있다.

언론과 매스컴, 한나라당과 정부.

청와대의 진두 지휘하에 국가 권력이 총동원되어 박근혜 죽이기에 나선 모양새다.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홀홀단신 한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거대한 권력의 힘을 총동원하는

무도한 수법만큼이나 그들의 냉혹한 심성을 보는듯 하여 내가슴이 서늘서늘하다.

권력의 대군단에 맞서고 있는 박근혜의 주변에는 왕년의 전사 몇 명이 고작인데, 말도

안되는 전력에도 박근혜는 전혀 흔들리지도 밀리지도 않으니 이또한 불가사의한 일이다.

홀홀단신처럼 보이지만 박근혜의 뒤에는 수천만의 지원군들이 안개속에 숨어 있음이라.

세종시를 통해 현재권력 이명박은 미래권력 박근혜에게 피하기 어려운 싸움을 걸어왔다.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정권의 동반자로 예우해야할 상대를 향해 진검 살수를 펼친것이다.

온 사방에 등등한 살기가 박근혜를 노려보고 있다.

정당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한 이명박식 공격에 대한민국은 또다시 분열과 갈등으로 찢어질

것이다. 4년동안 멀쩡하게 잘 진행되던 ‘행복도시’는 누군가의 어떤 음모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전쟁터가 되어 버렸고, 세종시는 양갈래로 나누어져 누더기가 되어버렸다.

그 권력자의 횡포에 도련님과 샌님들은 다 세종시를 버리고 돌아섰지만, 박근혜 홀로 의연

하게 맞서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국가백년대계와 양심은 결국 ‘박근혜 죽이기’였는가?

만약 그렇다면 세종벌판에서 박근혜를 향해 겨눈 살기어린 비수는 수천만개의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향해 돌아올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천하의 어떤 고수도 수천만개의 장검은 당해내지 못한다.

내가 만약 ‘관전자’의 입장이라면 이번에도 “박근혜 승”에 내 전부를 올인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