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

남과 북이 장성급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재설정 문제를 놓고 본격적인 공방전을 벌이고, 특히 이번에는 우리측이 국방장관회담에서 다루자고 먼저 ‘협상용의’를 내비친 것이 심상치 않다. 제17차 남북장관급회담을 앞두고 통일부장관이 NLL 문제 재검토 가능성을 언급하더니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 ‘대 폭 양보’ 발언이 나왔고, 이번에는 국방부까지 기왕에 ‘성역’시했던 이 문제를 들고나왔다는 점에서 예사롭지가 않다.

그동안 우리측은 정전협정 이래 지난 53년간 우리가 실효적으로 관할해왔고 1992년 남북기 본합의서에서도 실질적인 해상분계선 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NLL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원칙을 지 켜왔다. 그래서 새로운 해상경계선 획정이 필요할 경우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통해 군사적 신뢰구축을 제도화한 뒤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 입장은 NLL 설정 배경과 휴전체제 관리 측면에서 볼 때 지극히 타당하다. 그리고 굳이 이제 와서 바꿔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애당초 NLL은 6·25 종전 직후인 1953년 8월 유엔군사령부가 함 정과 항공기 활동의 북방한계를 설정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그은 해상분계선이었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그것은 북한측에도 유익한 선이었기 때문에 이에 관한 정전협정 제2조13항 ‘연해도서’ 관할에 동의했던 것이다. 즉, 정전협정 협상 과정에서 공산측은 유엔군측으로부터 38선 이남 황해도 인접 도서권의 통제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해군력이 거의 없었던 북한군으로서는 연해 수역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NLL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서해 해상경계선은 북측의 묵시적 ‘동의’로 정전협정에서 제외된 것이었다.

사실이 이럴진대 이제 와서 정전협정에 없기 때문에 국제법상 영해를 규정하는 경계선으로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NLL을 무 효화하고 ‘서해 5도 통항질서’를 내세워 새로운 해상경계선을 들고나온 것은 정전체제 그 자체에 대한 도발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은 미국의 베트남전 패퇴에 힘입어 지난 73년 말부터 서해 5도를 북한수역에 일방적으로 포함시킨 영해법을 선포하면서 본격 적으로 NLL에 도전했고, 그것이 1999년 6월15일의 연평해전과 2002년 6월29일의 서해교전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NLL은 비록 종전이라는 특수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설정 됐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국제법적 객관성을 갖고 휴전체제 안정을 보장하는 전초적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미국과 유엔군사령부도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새로운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는 어떠한 이유로든 북측의 NLL 침범은 도발로 간주하겠다는 입장이 확 고하다. 여기서 남북한 간의 합의란 물론 군사적 신뢰 구축을 가 리키며 여기에는 군비통제와 위기관리에 관한 모든 공동노력이 포함된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이에 관한 기초적인 신뢰구축 조치도 제도화돼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북핵무장 위협으로 위기가 정 점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즉, 비록 우리측이 NLL 고수 방침을 유지하면서 북측에 대해 군사회담에 응할 수 있는 명분을 주 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히고는 있지만, 휴전선이나 다름없는 해 상경계선을 협상하겠다는 것은 영해수호권을 포기하고 나아가 휴전체제를 무력화시키려는 북측의 전략에 그대로 휘말려들 위험이 있다. 그러잖아도 북의 집요한 ‘우리민족끼리’ 통일전선전략으로 우리 내부에 사상적 ‘천하대란’이 일어나고 한미동맹이 흔 들리며 북핵 무장이 기정사실화해가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우리가 당면한 위기의 실체를 직시하고 전략적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지 ‘전선’을 담보로 평화를 구걸할 때가 아니다. 모두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남주홍 / 경기대 교수·국제정치학